일곱 푼의 진실과 세 푼의 허구

🖋️400만 청년을 '그냥 쉬는 세대'로 부르는 불편한 진실 본문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400만 청년을 '그냥 쉬는 세대'로 부르는 불편한 진실

hyemindiary 2024. 8. 1. 13:11
728x90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한 삶의 방식대로
주인장 역시 이렇게 생겨 먹은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이 영상은 제가 제게,
제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습니다.

우리는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인장이 빡쳐서 만든 영상. <<400만 청년을 '그냥 쉬는 세대'로 부르는 불편한 진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 
우리 각자 인생의 고유한 여정을
인정하자는 의미입니다. 

남들이 정한 '정상적인' 삶의 경로
대학교, 취직, 결혼, 내 집 마련 등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고유한 자신만의 가치와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로 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여정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그냥 쉬는 청년"이라는 표현이
언론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주로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우리 세대가 직면한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너무나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냥 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스펙 쌓기'의
압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대학 졸업장, 높은 학점, 어학 점수, 자격증, 인턴 경험... 


이 모든 것을 쌓으라는 사회의 요구에
필사적으로 응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요? 

자아실현의 기회? 진정한 꿈을 찾을 시간?
혹은 단순히 젊음을 즐길 권리? 
더 나아가, 이렇게 쌓은 '스펙'들이
과연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를 가져다주었나요?

'그냥 쉬는 청년'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노력과 고민, 그리고 현실의 벽을 무시한 채, 
마치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냥 쉬는 청년'이라는 말은
우리의 현실을 왜곡합니다.
우리는 쉬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
 - 일본식 도제 문화를 모방한 인턴 제도
 - 불문율과 눈치 게임이 만연한 조직 문화
 - 신입사원을 '백지 상태의 학생'처럼
    대하는 비합리적 관행
 - 극심한 경쟁 속 끝없는 자기 계발 요구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그냥 쉬는 청년' 현상이
연애, 결혼,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하... 이거 제가 만든 문장 아니라
충격적이지만,
실제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말한
워딩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들:
 - 왜 청년들이 '쉬는 것처럼' 보이는가?
 - "너도 저렇게 될래?" "조금만 더 공부하면 부인,남편 얼굴이 바뀐다"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매기며 공부하게 한 입시 제도가 초래한 것은 무엇인가?
 - 쿨한 척 말고 솔직해지자. 도제 문화 속 눈치게임이 팽배한 한국식 사회생활이 사라질 수 없는 건 왜일까?
 - 세대 간 불평등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 건강한 직장 문화를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단순히 현상을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복잡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편, 카이스트 대학의 '실패 연구소' 같은 시도는
우리 세대의 고민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연구소가
한국의 엘리트 대학 중 하나인 
카이스트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첫째, 카이스트는 현실적으로 보면
'누군가에겐 꿈이 이루어진 성공'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실패'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는 마치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투자자들이 
금융위기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의도와 달리, 청년들의 어려움을 대상화하거나
단순화할 위험이 있는 거죠.

둘째, '실패'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의 '실패'로 프레임화하는 것은 적절한가요?

결국, 카이스트의 '실패 연구소'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을지 모르지만, 
그 접근 방식과 주체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
우리들 모두 각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주인장의 최애 드라마 피디님은
곽정한 PD님..
그 분이 실험 정신으로 제작한 <한성별곡-정>
이 바로 다음 작품이 <추노>였죠.
아무튼 한성별곡 마지막 엔딩 장면은
모든 화에 나온 대사들을 짜집기해 보여주는데요.
역대 대한민국 사극을 조려버리는...
한동안 쥔나 여운에서 못 빠져나오게 하는
장면이 탄생하죠.
(하... 하필... 동시간대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
시청률이 씹나서... 응원하며 봤었습니다…)

-이나영: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이판: 애쓴 만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닙니까!

-황집사: 그대로 두는 법을 안다면 그대로 두어.
              허나, 그 법이 쉽지 않다.

-박상규: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박인빈: 알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대비: 그것이, 누구를 위한 미래란 말이오?
  정조: 조선의 백성들과,
           조선의 후손들을 위한 미래입니다. 

-이참판: 어찌 희생하지 않고서
              그 신념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양만오: 두려움에 떤다면,
              어찌 모든 것을 걸 수 있겠습니까

-정조: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이나영: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THE END)


조선시대의 청년들과
2024년 대한민국의 청년들...
고민하는 주제가 얼만큼 달라졌을까.

챗지피티와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고
로봇이 감정을 읽고 표정을 따라하는 시대에
우리는 몇 백년전 조선의 청년들이 가졌던
그 의문들을 똑같이 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