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푼의 진실과 세 푼의 허구

🎬한성별곡-正 l 곽정한 PD의 파격적인 8부작 고품격 사극 본문

주인장이 숨어서 보는 명작입니다.

🎬한성별곡-正 l 곽정한 PD의 파격적인 8부작 고품격 사극

hyemindiary 2024. 8.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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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한 PD님의 오랜 팬입니다.
<한성별곡-正> 시청률은 안타까웠지만,
이 실험적인 시도 덕분에,
그 다음 작품 <추노>가 탄생했죠.
 
지금의 PD님은 세련된 차도남 이미지 이나,
이때의 PD님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조선시대 상단을 이끄는 머리 좋은 지략가인데
충청도 말씨 때문에 말은 느려도 촌철살인하는 캐릭터.
지금은 조정대신으로 바뀌셨지.

한성별곡-正 많이 기대해 주세요 2007.07.03

 
2007년, 당시 고1이었습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 보던 친구들 사이에서
집에서 혼자 안내상 배우의 독백에 울컥 눈물 흘렸죠.
좀 이상하고 친구없는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내상 배우님의 조려버리는 독백에...
한동안 등하교길에서 혼자 비장해지곤 했죠.
교복 안 쪽에 총을 숨긴 혁명가처럼.
수업중에도 맴맴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닌다.
"아무리 저들이 소름끼치고 치가 떨려도."
"내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2009년 5월의 아침.
고3 교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성별곡의 안내상 배우가 연기한 임금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는 정조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여기 한반도에 살았던 이들 중,
시대를 거스르는 "누구든"을 연기한 것이 아닐까.
 
이 드라마 아시는 분, 댓글로 인사해주세요.

당쟁은 줄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질 않는다.
아무리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난 결코 저들을 이길 수가 없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또 다른 명장면.
드라마 속 이판과 당상관의 대화 씬.
이타적이고 올곧은 사람이
어떤 식으로 한계에 부딪히는지.
아무리 옳은 일을 위해 분노하고, 절규하고, 억울해해도.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면
실패다. 죽음뿐이다.
 
이판: 평생을 일해도 한양에 집 한칸 마련할 수 없습니다.
천도는 그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당상관: 솔직해지시게.
한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권력을 잡고 싶은 거 아닌가.
 
이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더니.
 
당상관: 역시 상놈의 피가 흐르는 서얼자식이라, 상놈처럼 말하는구나.
 
이판: 조선 백성 대다수가 상놈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제 몸에 그 피가 흐르고 있으니
비로소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거지요.
자랑스러운 피 아닙니까.


이 외에도 드라마 속 명대사들,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들, 소망을 놔버리니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나더이다.
  • 자기가 잘 못 사는 게, 잘 사는 이들 때문이라 하는 건, 남 탓만 해댈 줄 아는 노예근성이지요.
  • 애쓴 만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 해야하는 일 아닙니까.

 

김진표의 <학교에서 배운 것(2004년)>
노래를 아시나요.
시인 유하의 <학교에서 배운 것>을
김진표가 노래로 만들었죠.
 
학교에서 배운 것은,
매 맞고 침묵하는 법.
타인과 나를 비교해대고, 시기와 질투 키우는 법.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내가 가진 상상력을 이 많은 법들 앞에 무력화 시키는 법.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
일제식민지, 6.25전쟁, 분단, 급격한 경제성장.
출세를 위한 교육열이 뭐 나쁘냐고.
내 자식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위해 산 게
뭐 나쁘냐고.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라는 영화 아시나요.
방법이 틀렸던거죠.
바로 잡아야 하는 시기는 놓친거죠.
 
교실 급훈이
"지금 공부하면 배우자가 바뀐다."
"합격자 명단에 귀하의 이름은 없다."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12년이었다.
"덕분에 혜택을 누리며 살면서 역시 감사해할 줄 모른다."
아... 배만 안 굶으면 감사해야 하는 거구나.
아무리 고상하게 포장해도, 그게 그거 아닌가요.

 

주인장은 보수주의를 지지합니다.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가 아니라,
차등의 실력지상주의 보수를 지지합니다.
실력은 타고난 능력과 노력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력만 좋으면,
소시오패스여도 괜찮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력과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
그것이 인재들에게 기회를 더 주기 때문이
보수주의를 지지하죠.
그러나 그 인재들이
돈 있는 환경에서만 나온다면요.
대한한국의 보수주의는 망했다.
대한민국은 망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이타적이고, 맑고 여린 사람들. 
이들은 늘 감사해하고 만족해하며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그럴 수 있지라며.
하루에도 수천번 수만번씩
긍정적으로 살아야함을 다짐한다.
왜 그런 다짐을 해야만 하는걸까.

 


마무리
 
한성별곡 때문에, 커피프린스는 1년 뒤에 봤다.
와... 이것도. 그 당시에 동성애라는 파격을 보여준
조려버리는 드라마였구나...
이해가 가다가도, 밉기도 하다.
그래도, 시청률 참패로 묻혔기 때문에...
묵힌만큼 오랜시간 꺼내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곽정한 PD는 <한성별곡-正> 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다음 작품 <추노>를 통해 세상에 전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노비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배신하고, 서로가 서로를 쫓고 죽인다.
그런 피튀기는 현실 속에서도, 신념이 있다. 
언젠가 태양을 화살로 맞출 수 있다.는 믿음.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
맑고 여리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더.더.더. 행복했으면 한다.
 
노비 양만오: 부질없는 짓이네...
기생 월향: 그리 한번 소망해보는 겝니다...
-한성별곡 마지막회 마지막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