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솔을 펴고 꽃 파는 노점에서 어떤 아저씨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하는 말이었다. “딸에게 줄건데 이쁜걸로 좀 골라주쇼.”
추석연휴. 인천가족공원은 차량통행을 막는다. 공원 밖에 차를 대라는 것이다.
공원 주위 몇백미터는 불법주차 차량들로 뒤엉켜있다.
우리 가족은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폭염에 군밤파는 트럭옆에 구겨지듯 차를 세웠다.
수천명의 인파가 한 손에 꽃을들고 물결을 이루며 걸어간다.
우리 가족은 건물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네모난 유리박스를 향해 절하는 노부부. 휴게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가족들. 유리창에 소주잔을 테이프로 붙히는 청년.
나는 할머니의 위치를 찾는다. 매번 한 두줄씩 비껴가서 찾는다.
드디어 할머니를 찾았다. 정확히 3-100051 박스를 찾았다.
그리 정이 깊은 관계는 아니다. 조건없는 지지를 받아본적도 없다. 단지 손주니까 이름 부르며 반겨주신 기억은 난다. 그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관계에 포근함은 없었다. 그 인생도 순탄지 않았기에, 그에게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자애롭고 여유 넘치는 노인의 모습은 한번도 본적없다. 지금 내가 그에게 남은 감정은 연민 뿐이다. 부디 평안하시길 그리고 사랑받는 곳에서 환생하시길. 그 박스 앞에서 빌었다.
이것이 정상적 관계인진 모르겠다. 더 애틋해야하는것일까. 지금 내 마음이 사회적 윤리에 어긋난건 아닌가 싶어 가족들 앞에선 연기를 해야했다.
다시 차로 돌아가는 길. 난 아까 그 꽃집 아저씨는 잘 돌아갔을까. 그 생각에 사로잡혀 침묵했다. 가족들이 보기엔 할머니 생각에 잠긴 듯 해 보였을지도.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왜 하필 우리는 마음이란게 있어 죽음을 이다지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것일까.
한동안 그 아저씨의 “딸에게 줄건데 이쁜걸로 좀 골라주쇼.” 그 한마디가 먹먹하게 만들것같다.